대화는 있었다.
서로의 하루를 묻고,
해야 할 일을 말하고,
다음 일정을 정리했다.
말은 오갔고
형식은 유지되었다.
그런데 이상하게도
대화가 끝난 뒤
아무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.
서운함도, 분노도,
허전함조차도 아니었다.
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
나는 스스로에게 놀랐다.
감정이 없다는 사실은
생각보다 조용했다.
크게 무너지지도 않았고,
애써 붙잡을 것도 없었다.
그저
‘아, 지금은 그렇구나’
라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였다.
그 이후에도
삶은 그대로였다.
해야 할 일은 있었고,
하루는 예정된 속도로 흘러갔다.
어떤 관계는
끝나서 조용해지는 것이 아니라,
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
조용해진다.
지금의 나는
그 조용함 안에 서 있다.
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.